헨리 지가 쓴 '인간 제국 쇠망사'는 인류의 멸종을 필연적 과정으로 바라보며, 그 시작점을 호모사피엔스가 지배적 종으로 남게 된 순간으로 지목합니다. 이 책은 공룡의 멸종부터 현대 인류의 위기까지, 정향 진화론의 시각으로 인간 종의 생명사를 조명합니다. 저자는 인류에게 남은 시간이 한 세기, 길어야 두 세기밖에 남지 않았다고 경고하며, 우주로의 이주를 유일한 해법으로 제시합니다.

인류 멸종의 필연성과 역사적 전환점
헨리 지는 네이처지의 시니어 에디터로서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인류 멸종의 필연성을 설명합니다. 그는 공룡의 멸종이 6,600만 년 전 소행성 충돌 때문만은 아니라고 주장하며, 정향 진화론의 관점을 제시합니다. 정향 진화론은 모든 종에게 생명사가 있으며, 개체처럼 탄생, 전성기, 소멸의 과정을 거친다는 이론입니다.
인류의 멸종은 역설적으로 가장 번성했던 순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약 25,000년 전,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갈 무렵 호모사피엔스는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 호모 에렉투스 등 사람 속에 속하는 다른 종들을 절멸시키고 단독 지배종으로 남게 됩니다. 저자는 바로 이 순간을 인류 멸종의 시발점으로 봅니다.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 제국 쇠망사'가 로마 제국의 전성기부터 서술을 시작한 것처럼, 이 책 역시 인류가 가장 압도적인 지위를 확보한 순간부터 쇠망의 역사를 추적합니다.
이족보행의 시작도 축복이자 저주였습니다. 호미닌을 여타 유인원과 구분하는 결정적 특징인 이족보행은 뇌의 확대, 도구 사용, 원거리 시야 확보 등 수많은 이점을 가져왔지만, 동시에 치명적인 약점도 만들어냈습니다. 척추를 수직으로 세움으로써 인류는 탈장, 치질, 고혈압, 골절 등 수많은 질병에 노출되었습니다. 꼬리의 부재는 균형 유지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고, 이는 인체 구조의 대변역이라 할 수 있습니다.
로봇과 AI의 발전이 인간의 필요성을 감소시킬 것이라는 우려는 타당합니다. 기술 발달이 인간을 나약하게 만들어왔다는 책의 논지를 고려하면, AI 시대는 새로운 형태의 계급화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경제적 불평등을 넘어 생물학적 존재로서 인간의 가치 자체를 재정의하는 문제로 이어질 것입니다.
농경과 인구 문제가 가속화한 멸종 위기
농경의 시작은 인류 역사의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지만, 동시에 멸종을 앞당긴 재앙이기도 했습니다. 마지막 빙하기가 끝날 무렵, 호모사피엔스 인구가 증가하면서 수렵 채집만으로는 생존이 불가능해졌습니다. 전 인류가 수렵 채집인이라면 지구는 천만 명만 부양할 수 있지만, 농경 덕분에 현재 80억 인구가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농경은 치명적인 대가를 요구했습니다. 정주 생활과 가축화는 전염병의 온상이 되었습니다. 수렵 채집인들은 소규모 무리로 흩어져 살아 전염병에 잘 걸리지 않았지만, 농경민들은 좁은 공간에서 가축과 함께 살며 질병에 노출되었습니다. 결핵은 원래 소의 질병이었고, 독감은 가금류의 질병이었으며, 14세기 유럽을 강타한 흑사병은 쥐로부터 왔습니다. 코로나19 역시 인간의 가축화와 농경의 반작용으로 볼 수 있습니다.
농경은 영양 다양성도 감소시켰습니다. 수렵 채집은 자연 상태에서 다양한 영양소를 섭취할 수 있게 했지만, 작물화와 가축화는 극히 제한된 종에만 의존하게 만들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주식으로 삼는 작물은 손에 꼽을 정도이며, 가축화에 성공한 종도 10여 종에 불과합니다. 품종 개량으로 유전적 동질화가 진행되면서, 1840년대 아일랜드의 감자 대기근처럼 단일 작물에 대한 의존이 치명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인구 문제는 더욱 심각합니다. 1964년 인구 증가율 2.24%를 정점으로 인류는 감소 국면에 접어들었습니다. 학자들은 21세기 중반 90억-100억 명을 정점으로 인구가 줄어들 것으로 예측합니다. 인구 감소는 단순히 숫자의 문제가 아닙니다. 저자는 "아인슈타인 한 명이 태어나려면 수십억의 인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인구 감소는 혁신적 인재의 출현 확률을 낮추고, 결국 인류가 멸종 위기를 극복할 기술 발전을 저해합니다.
유전적 동질화 문제도 심각합니다. 17세기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가 남아프리카에 소규모 정착지를 만들었을 때, 초기 정착민의 근친혼으로 인해 포르피린증이라는 희귀병이 높은 비율로 발현되었습니다. 인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호미닌은 90만-80만 년 전 사이 번식 가능 개체수가 1,280명까지 감소했으며, 호모사피엔스도 10만 년 전 아프리카를 탈출한 소수 집단의 후손입니다. 아프리카 한 지역 침팬지 무리의 유전적 변이보다 인류 전체의 유전적 변이가 적다는 사실은, 우연적 외부 사건에 인류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줍니다.
우주 이주, 인류 생존의 유일한 해법
헨리 지는 우주로의 이주를 인류 생존의 유일한 해법으로 제시합니다. 그는 미래가 "식물과 여자에게 있다"고 말하며, 사회적으로 여성의 역할이 중요해질 것이라 예측합니다. 또한 육식을 줄이고 식물 중심 식단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식물을 직접 섭취할 때보다 소 같은 동물에게 먹인 후 고기로 섭취할 때 에너지 효율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유전 공학을 활용한 제2의 녹색 혁명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핵심은 우주 개척입니다. 저자는 우주로의 이주가 생각보다 우리 일상과 가깝다고 설명합니다. 도시인들은 이미 우주선과 유사한 환경에서 살고 있습니다. 자외선 차단 코팅 창문, 공기 정화 시스템, 밀폐된 공간에서의 생활은 우주 정착지의 초기 형태와 다르지 않습니다. 열대 동물이었던 호모사피엔스가 불의 발명 등으로 추운 지역까지 진출한 것처럼, 우주 이주도 인류의 자연스러운 확장입니다.
우주 정착지로는 달, 화성, 그리고 흥미롭게도 소행성이 제시됩니다. 지난 50년간 지구 바깥 행성에 발을 디딘 인간은 없었지만, 기술 발전으로 달과 화성 이주가 가능해질 것입니다. 특히 소행성은 독창적인 제안입니다. 화성과 목성 사이 소행성군에는 광물이 풍부하며, 내부를 파낸 후 도시로 개발할 수 있습니다. 지름 10km 소행성에는 수십만 인구의 도시를, 100km 소행성에는 캐나다 전체 인구를 수용할 수 있습니다. 인공 광합성 기술과 대량 우주 이동 기술이 개발된다면, 소행성은 자원 수급과 정착을 동시에 해결하는 이상적 선택지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촉박합니다. 저자는 인류에게 남은 시간이 한 세기, 길어야 두 세기밖에 없다고 경고합니다. 인구 격감으로 혁신 역량이 감소하기 전에 우주 이주 기술을 완성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인류는 네안데르탈인처럼 필연적으로 멸종할 것입니다.
새로운 행성 이주보다 지구 회복에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는 의견도 일리 있습니다. 우주 개척에 필요한 막대한 자원을 기후 위기 해결, 생태계 복원, 지속 가능한 에너지 개발에 투입한다면 지구에서 더 오래 생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자의 관점에서 보면, 지구 회복과 우주 이주는 대립적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입니다. 지구를 살리는 기술(인공 광합성, 재생 에너지 등)은 우주 정착에도 필수적이며, 우주 개척 과정에서 개발된 기술은 지구 환경 개선에도 활용될 수 있습니다.
'인간 제국 쇠망사'는 인류의 거대한 운명을 과학적으로 조망하며, 멸종이라는 불편한 진실을 직시하게 만듭니다. 동시에 우주 이주라는 희망적 대안을 제시하지만, 그것이 실현되려면 지금 당장의 행동이 필요하다고 역설합니다. 로봇과 AI 시대, 인간의 존재 가치를 재정의해야 하는 지금, 이 책은 개인의 삶과 인류 전체의 운명을 동시에 성찰하게 만드는 탁월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pkAb6fhKif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