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매일 수많은 이유를 주고받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정말 '진실'이어야만 할까요? 찰스 틸리의 『왜의 쓸모』는 인간이 이유를 대는 행위를 사회학적으로 분석한 책입니다. 이 책은 이유의 진위가 아니라, 이유를 통해 관계를 정립하고 재정립하는 인간의 사회적 상호작용에 주목합니다. 관습, 이야기, 학술적 논고, 코드라는 네 가지 범주로 나뉘는 이유 대기의 방식은,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대화 전략을 명확히 드러냅니다.

관습: 상황에 맞는 적당한 이유
관습은 일상에서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이유 대기 방식입니다. "내가 좀 덤벙대는 성격이라서"라는 말은 커피를 쏟은 물리적 원인을 정확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말은 그 상황에서 충분합니다. 찰스 틸리는 관습적 이유가 보편적이면서 공식에 의거한다고 설명합니다. 즉, 특정 상황에 딱 들어맞는 정형화된 표현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만약 커피를 쏟고 나서 "오늘 아침 엄마와 싸워서 화가 나서"라고 구체적으로 설명하거나, 마찰 계수와 수직 학력으로 물리학적 설명을 한다면 오히려 상대방은 당황할 것입니다. 관습의 핵심은 정확한 인과 관계가 아니라, 그 상황에서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적절한 반응입니다. "재수가 좋은 사람"이나 "때가 된 거야"같은 표현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용자 비평에서 지적한 대로, 이유는 팩트 기반이 아니라 관계성에 초점을 둡니다. "덤벙댔다"는 말 속에는 "당신은 피해자고 나는 가해자다", "우리 관계가 나빠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함축된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이처럼 관습적 이유는 두 사람의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거나 복구하는 도구입니다. 상하 관계에 따라 이유의 길이와 형식이 달라지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윗사람은 아랫사람에게 최소한의 이유만 대거나 아예 생략하지만, 아랫사람은 "죄송합니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처럼 인정과 사과를 포함한 긴 설명을 해야 합니다.
이야기: 예외적 사건의 인과론적 설명
이야기는 예외적이거나 특별한 사건을 다룰 때 사용됩니다. 일상적인 일에는 관습으로 충분하지만, 큰 사건이나 당혹스러운 일을 겪으면 인과론적 설명이 필요합니다. 찰스 틸리는 이야기가 보편적이면서 인과론적 설명을 한다고 분류합니다. 마거릿 애트우드는 "우리가 이야기 한 중간에 있을 때는 이야기를 의식하지 못하고 그것은 그저 거대한 혼란일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사건 안에 있을 때는 혼란스럽지만, 밖으로 나와 타인에게 설명할 때 비로소 이야기가 성립됩니다.
이야기는 복잡한 원인들을 극도로 단순화합니다. 다양한 가능성 중 자기가 원인이라고 판단한 것만 골라내고, 단순한 결론을 도출하며, 도덕적 판단을 덧붙입니다. "책임질 사람은 누구인가", "칭찬받을 사람은 누구인가"를 명확히 하면서 사건에 교훈을 심는 것입니다. 시간과 공간의 틀도 이해하기 쉬운 형태로 재구성됩니다.
학술적 논고와 달리 이야기는 상식적 지식이나 일반적 신념을 근거로 삼습니다. 전문적 지식이 아닌, 누구나 공유하는 평범한 말들로 인과 관계를 설명합니다. 찰스 틸리는 이야기를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위대한 사회적 발명품"이라고 평가합니다. 사용자 비평처럼 상충된 인과론적 해석을 곁들이는 것도 이야기의 특징입니다. 『나를 찾아줘』에서 로저먼드 파이크와 밴 애플렉이 보여준 두 가지 이야기의 경합은, 같은 사건에 대한 서로 다른 인과론적 해석이 어떻게 충돌하는지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이야기는 비극과 희극, 승리와 패배, 도덕과 비도덕을 만들어내는 강력한 도구입니다.
코드: 정해진 규칙과 절차의 적용
코드는 정해진 규칙, 범주, 절차에 따라 이유를 대는 방식입니다. 법적 판결, 의사의 병명 진단, 고백 성사, 노벨상 수여 등이 대표적입니다. 찰스 틸리는 코드가 구체적이면서 공식에 의존한다고 설명합니다. 코드는 행위자와 개념, 선언 사이의 관계를 정립하려는 집단적 노력의 결과입니다.
찰스 틸리 자신의 경험이 흥미롭습니다. 유럽 도서관에서 오래된 문서를 복사하려 했더니 거절당했고, 담당자는 "우리의 규칙 몇 조 몇 항에 따라 복사할 수 없다"고 선언했습니다. 이유의 정당성이나 인과 관계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코드에 명시되어 있기 때문에 안 된다는 것이 이유의 전부였습니다. 법적 판결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판결이 나오는 이유는, 법이 기존 코드와 사건을 정합시키는 과정에서 일상적 인과론과 괴리가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코드는 특정 지위에 있는 사람들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판사, 의사, 신부처럼 공인된 권위를 가진 사람들이 코드를 통해 이유를 댈 때, 그것은 개인의 견해가 아니라 제도의 선언이 됩니다. 야간 할증 제도를 설명하는 택시 기사도 코드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사용자 비평의 관점에서 보면, 코드는 관계의 비대칭성을 극명하게 드러냅니다. 코드를 사용하는 쪽은 권위를 행사하고, 듣는 쪽은 그것을 수용해야 하는 구조입니다. 정신과 의사가 환자의 말을 "나한테 그 말을 하지 마라"고 차단할 때, 강조점은 '그 말'이 아니라 '나한테'에 있습니다. 환자인 네가 의사인 나한테 그런 방식으로 말할 권한이 없다는 관계의 선언인 것입니다.
학술적 논고: 전문 지식의 인과론적 설명
학술적 논고는 구체적이면서 인과론적인 설명을 하는 방식입니다. 이야기처럼 인과 관계를 설명하지만, 상식이 아닌 전문 지식과 명확한 근거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다릅니다. 전문가끼리 대화할 때는 약층과 전문 용어를 사용해 효율적으로 소통하지만, 일반인에게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학술적 논고를 이야기로 번역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가 대표적 사례입니다. 찰스 틸리는 이 책을 "양질의 이야기"라고 평가합니다. 유라시아 대륙 사람들이 다른 대륙 사람들보다 발달한 문명을 이룬 이유를 인종주의가 아닌 진화론적 관점에서 설명하면서도, 일반 독자가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 형태로 풀어냈기 때문입니다. 다만 찰스 틸리는 전문 역사학자 입장에서 "책이 막 재밌어지려는 지점에서 끝나는" 아쉬움을 표현합니다. 기술적 이점을 어떻게 세계 지배로 전환했는지까지 다루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학술적 논고는 교향이 풍부한 아마추어가 중개 역할을 할 때도 효과적입니다. 전문 지식과 대중적 감각을 동시에 가진 사람이 학술적 논고를 이야기로 번역하면, 일반 독자에게 잘 전달됩니다. 의사가 환자에게 치료법을 설명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의사끼리는 학술적 논고로 대화하지만, 환자에게는 이야기 형태로 풀어서 설명합니다. 사용자 비평처럼 사회적 영향력 있는 사람은 이 네 가지 도구를 적재적소에 사용합니다. 전문가라도 상황에 따라 관습, 이야기, 코드, 학술적 논고를 넘나들며 소통합니다.
『왜의 쓸모』는 이유가 진실인가보다 관계를 어떻게 변화시키는가에 주목합니다. 네 가지 범주는 우열 관계가 아니라 상황과 관계에 따라 선택되는 도구입니다. 상하 관계, 거리감, 사건의 성격에 따라 적절한 이유 대기 방식이 달라집니다. 사용자 비평처럼 청자와 화자의 관계를 고려한 반응, 상충된 인과론을 곁들이는 능력이 사회적 영향력의 핵심입니다. 이 책은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하는 대화를 의식적으로 성찰하게 만듭니다.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CnV5idNauf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