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기술이 일상을 지배하는 오늘날, 우리는 진정한 '경험'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크리스틴 로젠의 《경험의 멸종》은 기술이 인간의 경험과 어떤 관계를 맺어왔는지, 그리고 직접 경험이 간접 경험으로 대체되는 현상이 인간의 정체성과 창의성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합니다. 이동진 평론가는 이 책을 "과연 인간은 어떠한 인간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무척이나 실존적이고도 철학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다"고 평가하며,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필독서로 추천합니다.

직접경험의 소멸과 리액션 영상의 시대
경험의 멸종에서 말하는 '경험'은 더 구체적으로 직접 경험을 의미합니다. 인간은 수백만 년 동안 진화하면서 특정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 감각을 가진 육체를 가진 존재로서 체험하는 것을 경험이라 여겨왔습니다. 그러나 최근 10년에서 20년 사이 디지털 혁명은 이러한 경험의 체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습니다.
크리스틴 로젠은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네가 그 자리에 있었어야 돼"라는 문장의 사용 빈도가 196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꾸준히 증가하다가 2012년을 기점으로 급격히 감소했다는 것입니다. 2012년은 미국에서 스마트폰 보급률이 급격하게 증가한 해였습니다. 저자는 이 두 현상 사이의 명확한 상관관계를 지적하며, 직접 경험이 온라인상의 간접 경험으로 빠르게 대체되고 있음을 경고합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리액션 영상입니다. 먹방, 언박싱 같은 영상들은 직접 경험을 간접 경험으로 대체하는 현상을 보여주며, 극단적인 경우 저자는 이를 '경험 표절'이라고까지 표현합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을 대상으로 한 전 세계 설문조사 결과입니다. 개인 기술(스마트폰 등)의 상실과 후각의 상실 중 선택하라는 질문에 무려 53%의 응답자가 차라리 후각을 상실하겠다고 답했습니다. 이는 개인 기술이 인간의 오감만큼이나 삶에 밀착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충격적인 지표입니다.
기업들은 이러한 상황을 마케팅에 적극 활용하고 있으며, 개인조차 자신의 삶 속 경험을 마케팅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음식을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진을 찍어 업로드하기 위해, 휴가를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셀카를 찍어 올리기 위해 경험하는 경우가 늘어났습니다. 저자는 이 과정에서 "인간은 그 자신의 광고가 되었다"라는 격렬한 문장으로 현대인의 모습을 꼬집습니다. 독자들은 이러한 지적에 깊이 공감하며, 직접 경험의 소중함을 되찾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온라인 중독과 소통 능력의 퇴화
직접 경험을 하는 인간에게 상호 소통은 매우 중요합니다. 사회적 동물로서 인간은 언어적 소통뿐만 아니라 비언어적 소통 능력을 오랜 세월 진화시켜왔습니다. 특히 얼굴 표정을 읽는 능력은 상대방의 기쁨, 분노, 싫어함을 눈치 채는 핵심적인 사회적 기량입니다. 그러나 온라인 환경은 이러한 능력을 상당히 변질시키거나 퇴화시키고 있습니다.
텍스트로 소통할 때 자기 자신을 위장하거나 거짓말하기가 훨씬 더 용이하며, 거짓말 장애가 더 많은 거짓말을 하고 더 용이하게 거짓말할 수 있도록 온라인 상황이 만들어 준다는 것이 저자의 진단입니다. 화상 회의의 경우에도 대면 소통에 비해 정보량이 현저히 적고, 멀티태스킹을 하게 되면서 상대방의 비언어적 소통 방식을 제대로 캐치해 낼 수 있는 능력이 퇴화하게 됩니다.
프랑스 철학자 시몬 베유는 "관심이라는 것은 가장 순수한 형태의 관대함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타인에 대한 관심을 잃어가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특히 온라인 환경에 몰두해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은 상대방의 표정을 읽고 상대방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할 기회를 상실하게 됩니다. 이는 평생을 두고 학습해야 할 일종의 기량이기 때문에 더욱 심각한 문제입니다.
흥미롭게도 기업들은 대면 소통의 소중함을 알고 있습니다. 픽사 스튜디오는 중앙에 거대한 아트리움을 설치하여 서로 다른 팀의 사람들이 우연히 만나 대화를 나누면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얻도록 설계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업들은 효율성만을 중시하여 엘리베이터 동선을 특정 층별로 따로 짜거나, 같은 층을 누른 사람들끼리만 탈 수 있도록 시스템을 조작합니다. 이는 평상시 일하는 사람들만 계속 마주보게 만들어 기업 내 창의성을 질식시키는 환경이 됩니다.
광장에서의 실험 결과도 주목할 만합니다. 몇몇 사람만 전화 통화에 몰두하고 있어도 전체적인 동선의 움직임이 느려지거나 엉킴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전화에 몰두하면 타인이 발산하는 비언어적 신호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독자들은 이러한 분석에 깊이 공감하며, 스마트폰 없이 지내보거나 대면 상호작용을 늘려야 한다는 실천적 메시지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디지털 기억과 시공간 감각의 변화
직접 경험이 소멸되면서 시간에 대한 감각도 근본적으로 변화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기다림'의 감각입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기다리는 것을 싫어하지만, 쇼핑센터에서 줄을 설 때 2분까지는 실제 2분처럼 느끼다가 3분, 4분이 되면 실제보다 훨씬 더 길게 인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2분과 3분 사이가 줄을 서다가 포기하게 되는 결정적인 지점이며, 남자는 보통 2분, 여자는 3분쯤에서 포기하는 경향이 많다고 합니다.
휴스턴 공항의 사례는 이를 잘 보여줍니다. 비행기에서 내려 수화물을 찾을 때까지 7분밖에 걸리지 않았지만, 1분 만에 카루셀에 도착해서 6분을 기다리자 승객들의 불만이 많았습니다. 공항은 짐을 찾는 곳을 6분 더 멀리 떼어놓아 카루셀까지 가는 시간을 6분으로 만들고, 도착하면 1분 후 짐이 나오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하자 불만이 획기적으로 줄어들었습니다. 뭔가 행동을 하게 되면 지루함이 덜해진다는 인간의 심리를 활용한 완벽한 조작 모사의 사례입니다.
지난 150년간 일상생활이 점점 가속화되면서 속도를 높이는 것이 효율을 높이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조바심은 개인 대출이 늘어나고 빚을 못 갚는 사람들이 증가하는 현상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크리스틴 로젠은 "과연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라고 했을 때, 그것은 기다림을 견뎌내는 저마다의 방식일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누군가는 멀리 날아다니는 새를 바라보고, 누군가는 추억을 떠올리고, 누군가는 앞줄에 선 모르는 사람과 대화를 나눕니다.
그러나 현대인은 조금만 지루한 시간이 있어도 바로 휴대폰을 꺼내 뉴스를 검색하거나 카톡을 합니다. 이렇게 틈새 시간을 오로지 온라인 소통으로만 채우면 창의성이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것이 저자의 지적입니다. 데카르트는 침대에서 천장에 붙어 있는 파리를 보면서 좌표 기하의 핵심 아이디어를 얻었고, 아인슈타인은 전차를 타고 가면서 베른탑을 보며 특수 상대성 이론의 중요한 아이디어를 얻었으며, 테슬라는 숲을 산책하면서 교류 전기에 관한 핵심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이러한 유휴 시간이 인간의 창의성과 인간다움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들입니다.
공간에 대한 감각도 마찬가지입니다. 저자는 공간과 장소는 다르다고 말합니다. 공간에 정의가 들어가고 의미가 부여되고 인간적인 부분이 들어가면 장소로 바뀝니다. 전화가 발명되면서 인간은 집에 없어도 집에 있는 듯한 감각을 갖게 되었고, 스마트폰은 내가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향하는지까지 정보 형태로 공유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스마트폰은 인간의 위치를 추적하고 정보화함으로써 오히려 인간을 억압하는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제3의 장소, 즉 집과 일터를 제외한 술집, 카페, 광장, 도서관 같은 공간은 전통적으로 인간이 순수하게 사교성을 발휘하며 공동체스러움을 발전시켜 나가던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카페에서조차 사람들이 옆자리 사람, 심지어 함께 온 앞사람과도 소통하지 않고 자기만의 가상 공간에 빠져 부재를 현존시키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장소에 대한 인간의 감각이 달라지면서 정체성도 변화했습니다. 내가 태어난 곳, 어린 시절을 보낸 곳, 다닌 학교 같은 물리적 장소가 아니라 온라인 프로필이 정체성의 장소가 되었습니다.
가장 역설적이고 위험한 징후는 기억의 변화입니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기억조차 기술에 아웃소싱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기억이 대화 속에서 살아 있거나 사진 앨범을 넘기면서 개인화하는 방식으로 소유되었지만, 지금은 기억이 사이버 공간 속 사진과 글로 남아 있고, 그 플랫폼 자체를 대기업이 소유하고 있습니다. 기억에 대한 통제권을 개인이 잃어버린 것입니다. 머지않아 개인이 세상을 떠날 때 디지털 무덤만 남게 되는 것이다라는 저자의 섬뜩한 지적은 디지털 기억의 본질을 꿰뚫습니다. 독자들은 손으로 쓰는 학습과 직접 체험의 필요성을 깊이 공감하며, 기다림과 지루함의 기능을 재발견하고 실천해야 한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BW8_53HmVKY